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폴 포트 (문단 편집) == 기타 == * 크메르 루주 정권 내 서열 2위였던 [[누온 찌어]] 전 인민대표회의 상설회의 의장이자 공산당 부서기의 부인 킴 세인은 당시 폴 포트와 그의 측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를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손 센 국방부장 부인 등과 함께 건물 1층에 살고 남편(누온 찌어), 폴 포트, [[이엥 사리]], [[키우 삼판]]이 3층에 살고 있었다. 근무 장소이기도 하고 숙박 장소이기도 했다. 폴 포트는 암살을 피하기 위해 잠자는 곳을 때때로 바꾸고는 했다. > >내가 맡은 일은 이들에게 하루 세 번의 식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밥 이외에 반찬은 두 종류뿐이고 간부 식사도 결코 사치하지 않도록 정해져 있었다. 남편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식사를 나를 때뿐이었다. 그들은 언제나 바쁘게 움직였다. > >나는 최고 간부 집단 식사뿐 아니라 외국에서 손님이 와 요리사가 요리할 때 입회하는 일도 했다. 요리사가 독을 넣지 못하도록 감시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이들을 노린 독살 미수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049|출처]] * [[깡 겍 이우]]가 증언한 바에 의하면, 폴 포트가 부재중일 시에는 누온 찌어가 폴 포트의 업무를 대행했으며, 폴 포트가 명령을 내리면 누온 찌어가 이 명령이 어떻게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 결정했다고 한다. * 주변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폴 포트는 겉보기에는 말투가 부드럽고 침착했으며, 말할 때에 다른 사람을 꾸짖는 일이 없었고, 잘 웃으며 따뜻하고 친절하며, 기품이 넘치는 '아주 호감이 가는'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폴 포트가 교사 시절이었을 적에 제자였던 사람은 심지어 폴 포트가 '정의와 정직을 사랑하고 부패를 미워하게끔 설명할 수 있는 분 같았습니다.'라고 술회했으며, 1967년부터 1975년까지 폴 포트의 전속 여성 요리사로 일하던[* 폴 포트의 집권 후에는 캄보디아 대사관의 정치 연락관으로 베이징에 파견되어 폴 포트의 모든 사람들과 직접 통신을 담당했다. 참고로 그녀의 남편 피치 체앙(Pich Cheang)은 동시기에 베이징 주재 대사로 일했다.] 용 모은(Yong Moeun, 1947~2020)은 '인간' 폴 포트에 대해 "나는 그의 미소에 매료되었고 그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알게 되었다."고 주장하며 여전히 그립고 사랑한다고 생각했고, 농담을 즐겨했던[* 실제로 그녀의 말에 따르면 폴 포트는 반대되는 말을 함으로써 농담을 하는 것을 좋아했는데, 약간 짠 음식을 먹고는 그 음식이 묽다고 말하기도 했다.] 폴 포트에 대한 유일한 불만점이 그가 좋아하는 음식을 알아내는 데 시간이 좀 걸렸다는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이며, "그는 살인자가 아니라 몽상가였다." "'''누가 그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어?'''"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참고로 그녀는 폴 포트의 범죄에 대해서는 "잘못된 일은 그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가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없었고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 모두 식별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들은 확고한 지혜를 추구하기 위해 갓난아기까지 남겨두고 머리와 팔에 합류하는 절대적인 결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아이들을 위한 시간이 없었습니다."라며 두둔했다. 이후 그녀는 2020년 3월 4일에 위암으로 향년 73세를 일기로 사망했다. [[https://www.voacambodia.com/a/yung-moeun-pol-pot-s-trusted-aide-and-beijing-envoy-dies-at-73/5330439.html|#]]] [[https://www.dailymail.co.uk/news/article-8196761/Chefs-former-dictators-including-Fidel-Castro-Saddam-Hussein-reveal-secrets-job.html|#1]] [[https://spainsnews.com/fidels-ice-creams-and-pol-pots-soups-dictators-at-the-table/|#2]] 사실 [[아돌프 히틀러]]와 [[이디 아민]]도 개인적으로는 매우 다정다감하고 친절한/유쾌하고 농담을 즐기던 성격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리 이상한 것은 아니다. * [[이엥 사리]]의 말에 따르면, 폴 포트는 자신을 '정치 천재'일 뿐만 아니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천재 작사가'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로 민주 캄푸치아의 국가 [[영광스러운 4월 17일]]의 작사자는 폴 포트라고 전해진다. 다만 이 국가의 가사는 다른 크메르 루주 일원이 작사했다는 설도 있다. 작곡자는 불명. * 말년에 폴 포트가 외국 기자와 한 인터뷰가 기록으로 남아 있다. 주로 기존에 알려져 있던 사실들을 폴 포트가 직접 반박하는 내용으로, 크메르 루주의 리더가 된 과정이나 비밀주의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다. 크메르 루주가 벌인 학살에 대해서는 실수로 칭하는 등 어느 정도 인정하는 모습을 보이긴 하나, 모든 것이 베트남에 의한 캄보디아 복속을 피하기 위함이었다고 주장하며 베트남에 대해 강한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공산주의자였으면서도 베트남을 물리치기 위해 자유진영 국가인 [[미국]], [[태국]]과도 손잡으려 했던 사실이나, 서방의 지원을 은밀히 받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 폴 포트가 사망한 날짜인 [[4월 15일]]은 바로 '''[[김일성]]의 생일이기도 하다.''' * 국민들에게는 맹물에 가까운 멀건 쌀죽만 먹게 한 주제에 정작 폴 포트 본인은 당시로서는 호화로운 음식이었던 사슴 및 멧돼지 고기, 신선한 과일, 브랜디, 중국산 술을 좋아했으며 특히 [[코브라]]로 만든 수프를 굉장히 좋아해 뱀의 피를 컵에 담은 것과 같이 먹었다고 한다. 게다가 폴 포트를 위시한 크메르 루주 지도부는 서구산 음식들까지 가리지 않고 너무 잘 먹은 나머지 오히려 '''집권 이전보다 살이 더 쪘다고 한다.''' 참고로 용 모은의 증언에 따르면 폴 포트는 말린 게나 어묵과 땅콩을 곁들인 태국식 요리나 구운 생선, 구운 닭고기도 좋아했다고 하며, 2018년에 한 인터뷰에서는 폴 포트가 신 생선 수프와 드레싱 샐러드도 좋아했다고 회고했다. * 5살 때부터 9살 때까지 크메르 루주 치하를 겪으며 10살도 안 된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15살밖에 안 된 큰언니, 5살밖에 안 된 여동생을 잃은 과거를 겪은 캄보디아계 미국인 여성 인권 운동가 로웅 웅(Loung Ung, 1970)은 2000년에 그 과거를《First They Killed My Father》이라는 책으로 출판했다. 이 책은 출판된 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2017년에는 [[안젤리나 졸리]]가 감독하여 [[넷플릭스]]에 배급한 단막극으로도 만들어졌으며, 한국에서는《킬링필드, 어느 캄보디아 딸의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2019년에 번역 출판되었다. 특히 이 책 속의 몇몇 장면들은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 중 하나의 현장을 10살도 안 된 지극히 어린 나이에 가족을 4명이나 잃은 어린 소녀의 시선으로 바라본 장면들이기 때문에 더더욱 참혹하게 다가온다. 다만 [[신동혁]], [[박연미]]처럼 거짓 증언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존재한다. * [[프랑스]]에는 지금도 폴 포트의 동생 및 친척들이 일부 살고 있다. 이들은 크메르 루주 정권 시절부터 프랑스로 망명했다고 하는데 친척이고 형제들이라도 자신의 주장에 동참할 것을 강요하는 폴 포트의 모습을 보고는 기겁하고 프랑스로 달아났다고 한다. 그래서 폴 포트가 죽을 당시 해외 언론들이 이들을 찾아가 인터뷰도 했었다. 다들 착잡한 반응을 보였다고 하는데 폴 포트의 동생은 형도 순수하던 시절이 있었다면서 한숨을 쉬었다고 한다. 심지어 [[http://legacy.h21.hani.co.kr/hankr21/K_98110189/98110189_005.html|그보다 13년 먼저 태어난 형이었던 살롯 셍]] 역시 똑같은 말을 했다. 참고로 살롯 셍은 맨 위의 숙부의 [[킬링필드|만행]]에 경악하여 글을 남긴 조카의 아버지로, 왜 이 형이 오랫동안 알지를 못했냐면 폴 포트의 동생이 도저히 알려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형이 충격을 받을까봐. 그러나 끝내 그 사실을 알게 되어 큰 충격을 받은 폴 포트의 형은 결국 무시무시한 만행을 저지른 동생을 원망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 폴 포트의 킬링필드는 인류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들로 꼽히는 다른 이들보다도 더욱 잔혹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그의 학정에 비견될 만한 통치를 한 인물은 20세기 전체를 통틀어 몇 없다고 평가받는다. * 폴 포트의 학정과 가장 비견되는 통치를 한 인물은 비슷한 시기 [[적도 기니]]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로, 차라리 비뚤어지게나마 나름의 신념이나 국가 발전에 대한 목표 의식이라도 있었던 다른 독재자들이나 폴 포트와는 달리 이쪽은 아예 국가 운영에서 완전히 손을 떼고는 명확한 이유도 없이 기괴한 만행들을 저지르며 나라의 모든 인프라를 파괴하고 전란도 없이 인구의 '''절반'''에 달하는 인명 손실을 입히며 나라를 붕괴 직전 상태로 만들어버렸다. 실제로 응게마의 별명 중 하나가 바로 '아프리카의 폴 포트'였으며, 응게마의 정책이 폴 포트와 매우 비슷하다는 의견도 있다. [[https://www.reddit.com/r/HistoryMemes/comments/10anq6t/when_i_think_that_no_one_in_modern_times_is_as/|참고자료]] 그러나 응게마조차 불우한 어린 시절로 인해 극심한 정신병력과 사이코패스 성향, [[마약]] 중독을 앓고 있어 정신이 온전치 않았다는 것을 고려하면 온전한 정신으로 오로지 본인의 잘못된 신념으로만 악행을 저지른 폴 포트의 평가는 더더욱 추락할 수밖에 없다. * 정기 국제항공편과 외국 대사관까지 없애버린 그의 정책은 [[엔베르 호자]]의 [[알바니아]]도 개방적인 것처럼 보일 수준인데, 그 알바니아도 자체 비행기가 없어서 공군에게서 비행기를 임대해야 했을 정도였음에도 명목상의 국영 항공사는 있었다. 사실 [[북한]]도 [[고려항공]]이라는 항공사를 갖춘 것은 물론 한때 [[스위스]] 노선도 운항한 적이 있고(애초에 [[김정은]]이 스위스 유학생 출신이다), 대부분의 공산권 국가들은 서부, 중부 유럽과 중동 노선은 기본적으로 운항하며 미국 노선을 운항한 항공사도 드물지 않았으며, 심지어 알바니아 못지않게 폐쇄적이었던 [[마시아스 응게마]] 치하의 [[적도 기니]]조차 정규적인(?) 국영 항공사는 있었다. * 미국의 밀덕판 [[vs놀이]]라 할수 있는 프로그램 [[Deadliest Warrior]]에는 폴 포트의 크메르 루주와 [[사담 후세인]]의 [[특수 공화국 수비대]]가 가상으로 맞붙는 에피소드가 나온 바 있다. 기습공격으로 5:5에서 2:1로 후세인을 몰아붙이는 데 성공했지만 후세인의 훼이크에 낚여 사살당하며 패배한다. [[https://m.youtube.com/watch?v=N-jo7pwv4Zs|링크]] * [[기독교]]등 종교 진영에서 [[무신론]] 측의 비판에 대해 종교인만이 사악하고 무자비한 학살을 저지를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주장하기 위한 반론으로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물론 무신론자 진영에서는 이들 학살자의 교조화된 이데올로기가 결국 종교 교리와 다를 바 없는 것이 아니냐고 반박하긴 한다. 그럼 결국 종교가 없는 무신론자도 그 자리를 대체할 세속 이념에 의해 '종교화'될 수 있으며, 특히 무신론에 입각해 종교인들을 탄압하고 살해한 사례는 무신론과 반종교주의 그 자체도 교조화되어 폭력의 명분으로 이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지만. * 영국의 테너 가수 [[폴 포츠]](Paul Potts)와 이름이 비슷해 외국에서도 간간히 조크로 엮이곤 한다. 실제로 폴 포츠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한 영화 <원챈스>에서도 폴 포트가 언급되었다. 폴 포츠는 폴 포트와 이름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학창 시절에 놀림감이 되어 폴 포츠 역시 폴 포트를 매우 증오한다. * 미국의 [[하드코어 펑크]] 밴드 데드 케네디스의 노래 Holiday In Cambodia에 '폴 포트'를 반복해서 외치는 부분이 있다. 이 노래 자체가 [[허세]]부리는 미국 대학생이나 특권 의식을 뽐내는 [[여피]]족들을 폴 포트 정권 하의 캄보디아에서 휴일을 보내게 해 주겠다고 비판하는 노래이다. * [[차지철]]은 [[부마민주항쟁]]에 대해 폴 포트 정권의 [[킬링필드]]를 보고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도 죽였는데 100만 명에서 200만 명을 탱크로 밀어 버린다고 문제가 되겠냐"는 망언을 하였다고 하는데, 2011년 [[한겨레]]에서 공개된 [[김재규]]의 최초 진술 녹취록에 따르면 [[박정희]]의 발포 명령 발언은 존재했지만 킬링필드 발언은 커녕 그 자리에 차지철도 없었다고 한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501181.html|#]] * 유튜브에 Sat Tee Touy (Look At The Owl)라고 검색하면 폴 포트를 찍은 영상이 나오며 [[https://www.youtube.com/watch?v=LZ1QZnRXs58|이 노래가]] 나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P6OXvHG_lO4|예시]] 또한 킬링필드의 모습과 비슷한 사진에 크메르 루즈 군인의 군복을 합성한 영상도 [[https://www.youtube.com/watch?v=3bbe9E8XaXk|있으며]][* 신 도라에몽 1기 6화의 한 장면이다.] 킬링필드와 전혀 관련이 없는 [[Among Us]] 의 캐릭터에다가 군복을 합성한[[https://www.youtube.com/watch?v=IUSNZe8VH3A|영상]] 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https://www.youtube.com/watch?v=T-LX7swcN-0|이 영상]]처럼 가사 번역을 민주 캄푸치아에 대한 찬양 내용으로 '''왜곡'''한 영상도 있다. 실제로는 토끼가 마약을 팔고 개구리와 도마뱀이 마리화나를 피운다는 가사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zcl408XcNio|올바르게 번역한 영상]][[https://lyricstranslate.com/ko/sat-tee-touy-look-owl-sat-tee-touy.html|가사]] 원곡은 크메르권 음악의 왕이라 불리는 [[https://en.wikipedia.org/wiki/Sinn_Sisamouth|신 시사뭇]][* Sinn Sisamouth, 1932?~1976?. 생전에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캄보디아의 [[엘비스 프레슬리]]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은 싱어송라이터이며, 짧은 생애 동안 1천여곡을 작곡할 정도로 활발히 활동했다. 참고로 그는 [[크메르 공화국]]을 지지했고 이 때문인지 크메르 루주 정권 때 행방불명되었다.]의 [[https://youtu.be/RmjadEu8zvM|Satt Thee Thuy]]로 추정된다. * 그는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였음에도 이엥 사리, 이엥 티릿, 키우 삼판, 누온 체아, 깡 겍 이우와 다르게 [[ECCC|전범 재판]]을 면했는데 전범 재판 이전에 이미 사망하였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하게 폴 포트의 명으로 1997년에 살해된 손 센과 2002년 사망한 케 팍(Ke Pauk), 2006년에 사망한 따 목도 재판에 회부되지 않았다. * 폴 포트가 집권하는 3년 6개월 동안 캄보디아의 인구는 750만 명에서 672만 명으로 줄어들었다. 이 짧은 기간 동안 전체 인구 7명 중 최소 1명 이상, 하루 평균 630만 명이 사망한 것이고 인구 자연증가분을 감안하면 7명 중 1명은 어디까지나 최소 수치다. 총 인구 대비 사망자를 따지면 2021년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대략 740만 명이 죽은 셈이다. [[대구광역시]](250만)와 [[부산광역시]](350만), 그리고 [[대전광역시]](150만)까지 통째로 증발했거나 서울 인구의 3/4이 증발한 셈이다. 이 정도 사망률이 나타나는 사례는 [[조선]]시대의 [[경신대기근]]처럼 유례 없는 기상변화가 생겨 온 국민이 기아에 빠지거나 [[6.25 전쟁]]처럼 전 국토가 포화에 휩싸이는 극단적인 상황 외엔 없다. * 폴 포트의 집권 기간 동안 [[평균 수명]]은 14.5세까지 급감하였다. 중세 영국에서 [[흑사병]]이 창궐할 당시 영국인의 평균 수명이 17세 정도였으며, [[https://www.thelancet.com/pdfs/journals/lancet/PIIS0140-6736(15)61231-4.pdf|채드윅 보고서]]에 따른 1842년 리버풀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약 15세, [[르완다 내전]] 당시 르완다의 평균 수명이 14.1세였다. * 다만 [[라나발로나 1세]]나 [[프란시스코 마시아스 응게마]]처럼 폴 포트 이상으로 문자 그대로 '''[[타노스(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인구의 절반을 없애버린]]''' 극단적인 지도자도 있긴 했지만 이 둘은 극히 희귀한 사례다. * 폴 포트의 [[킬링필드]]를 [[https://youtu.be/0bzqQkRTVw8?si=9x0jdgwUSHe9DC6I|매우 짧게 요약한 밈 영상]]이 있다. STEP 3에서 학살이 반복될수록 뒷배경이 엉망이 되어가는 것이 인상적이다. * 캄보디아 내 소수민족들 중에는 폴 포트를 추앙하는 이들이 꽤 있다. 캄보디아 안에서 사람 대접을 받지 못하던 그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크메르 루주 시절 정치적 발언권이나 경제적 혜택을 주었기에 자발적으로 크메르 루주가 된 사례도 많았다. 그리고 축출되고도 크메르 루주가 밀림 속에서 10여 년에 이르는 내전을 벌였던 것도 이들의 지원과 지지가 컸던 점도 무시할 수 없다. 또한 폴 포트가 죽어서 화장될 때 원주민들 중에서는 되려 슬피 울던 이들도 꽤 되었고 지금도 신성시하여 제사까지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 이렇게 캄보디아 소수민족들이 폴 포트를 추앙하는 건 시골에 거주하는 소수민족들만 그렇고 소수민족이라도 도시에 거주하거나 태어났다면 똑같이 탄압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캄보디아 소수민족들 중에도 폴 포트를 증오하는 이들과 폴 포트를 존경하는 이들 사이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게다가 캄보디아의 소수민족 젊은 세대들은 주류민족과 동화가 되든 동화를 거부하든 간에 캄보디아의 경제가 성장할수록 폴 포트에 대해 극도로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더구나 캄보디아인들 중에서는 폴 포트를 그리워하며 그의 무덤에 들러 아이들의 행복, 승진, 아름다운 신부를 빌거나 복권 번호를 묻는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데, 전직 크메르 루주 출신 인사들과 그 가족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https://www.voacambodia.com/a/twenty-years-after-his-death-cambodians-still-struggle-to-put-memoreis-of-pol-pot-behind-them/4360948.html|#1]] [[https://www.nbcnews.com/id/wbna29933064|#2]] 전직 크메르 루주가 아니더라도 '폴 포트가 베트남인 죽인 것은 잘한 것'이라며 폴 포트를 두둔하는 캄보디아인 민족주의자들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